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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하다


‘조심하지 않는 바람에 마음이 온통 시로 얼룩졌다’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시시詩時하다, 라는 제목 뒤이다. ‘진은영의 시가 필요한 시간’ 이라는 표현도 붙어 있는데, 시시詩時하다, 라는 제목 앞이다. 진은영의 시집이 세 권,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2003), 《우리는 매일매일》(2008), 《훔쳐가는 노래》(2012), 있는데 모두 좋았다. 《시시詩時하다》는 시인의 시가 아니라 시인이 좋아하며 본 시에 대한 시인의 단상으로 가득하다. “마르케스는 늘 새벽에 일어나 ‘손이 식기 전에’ 글을 쓴다고 했다. 나도 나를 건드린 사물들, 사람들, 그리고 책에 대한 기억이 내 손에서 식기 전에 뭔가 써보고 싶다. 나는 쓰는 일을 통해 사라진 사물들과 시간 속에 거주한다.” 책의 앞날개에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그러니까 책에 실린 시들은 시인을 건드린 것이다. 건드려진 시인은 글로 반응했고, 그것이 한국일보에 <아침을 여는 시>라는 코너에 2011년에서 2016년까지 연재되었다. 책에는 그중 아흔 두 편의 시가 추려져 실려 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은 시들이 골고루 등장한다. 알만 한 시인들도 있고 전혀 모르겠어 도리질하게 만드는 시인들도 있다. “성장하는 것이든 늙어가는 것이든 모든 변화는 공포와 망설임을 동반합니다. 따듯한 물속에서 조금씩 녹는 일은 얼음에게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 내 안에서, 내 주변에서 물고기 알처럼 섬세하게 꼬물거리는 일들을 지켜봅니다. 그러면 그 끝나지 않는 변화가 나에게 진정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어요.” (p.89) 삶이 막막할 때는 산문인 글을 읽지만 삶을 대하는 나의 감정이 막막하다고 느껴질 때는 시를 읽는 편이다. 그러고 나면 간혹 가슴이 먹먹해지고, 막막하던 감정에 조그만 구멍이 뚫리고는 한다. 그때 형언이 가능해지는데, 그렇게 조금씩 혼잣말을 하다보면 비로소 나의 감정이 바라다 보인다. 보이고 나서야 설명을 할 수 있게 되고, 설명을 듣고 나면 나는 그제야 수긍할 수 있게 된다. 『말벌은 먹이를 잡을 때 얼마나 노련한지 한 치의 실수도 없다고 해요. 정확히 신경중추를 찔러 마비시키는 솜씨가 “최고의 고충학자와 숙련된 외과의사 같다”라고 철학자 베르그손이 말했을 정도랍니다. 말벌은 곤충이 날아오면 어떻게 죽일까 고민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기계적으로 응합니다. 그러니 실수가 없는 것이겠지요. 베르그손은 인간의 의식이란 “주저함, 또는 선택”의 활동에 다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지난 주말 우물쭈물 바보 같은 짓만 골라 했던 그 사람을 이제 그만 용서해주세요. 전화도 받아주세요. 엄마 화 돋우기를 방학숙제로 받아온 듯한 아이들의 실수도 이해해주시구요. 그토록 어리석었던 우리의 청춘, 무수한 실수들도 웃으며 떠올려주세요. 모두가 엄연히 살아 있어서 그래요.』 (p.189) 굉장히 단조로운 생활을 근근이 꾸려 나가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잠드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잠에서 깨야 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일단위의 시간표, 주단위의 시간표, 월단위의 시간표에 거의 변함이 없다. 그것의 총합이 연단위의 시간표가 될 것인데, 그것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발견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데도 과거를 돌아다보면 변화무쌍 하였다고 여기게 되고, 그런데도 미래를 짐작해보는 일은 대체로 불허된다. “시인들의 영원한 레퍼토리는 사랑, 혁명, 죽음. 그 중에서도 단연코 죽음이 최고지요. 어수선하지만 혁명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아간 시인이 여럿일 테고요. 드물기는 하지만 사랑이 멀리 비켜간 생도 있어요. 그런 경우엔 신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죠. 그렇지만 죽음은 모든 시인들,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유일한 공통의 사건입니다. 그것은 모든 이들의 삶과 가까워요. 릴케는 죽음은 우리의 삶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p.193) 내가 허용하고 싶은 것은 아침마다 시 한 편을 읽으며 시작하는 삶, 같은 거다. 그렇게 시작된 삶은 매일 매일이 비슷하여도 매일 매일이 비슷하기만 하다고 치부할 수는 없을 거다. 적당한 때에 삶이 모두 끝이 나고, 누구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의 시간표가 유품처럼 불살라지더라도, 죽음 앞에서 유일하게 교류되는 인류 보편의 침묵의 순간, 매일 매일의 시가 기념비처럼 설 수도 있을 거다.진은영 / 손엔 사진 / 시시詩時하다 / 예담 / 287쪽 / 2016 (2016) ps. 책에는 네 개의 챕터가 있고, 각각의 챕터에는 이런 시들이 실려 있다.Ⅰ 이별의 순간 : 너는 말했다_뻬이따오, 환절기_박준, 네 이름은 손 안의 한 마리 새_마리아 츠베타예바, 당신 생각_김태형, 숲에 관한 기억_나희덕, 낯선 여인이 나온 어느 날 오후의 꿈_로버트 블라이, 세 개의 벽과 두 개의 문_쥘 쉬페르비엘, 某月某日의 별자리_황학주, 손가락이 뜨겁다_채호기, 그녀_배용제, 밤의 파리_자크 프레베르, 고슴도치_폴리 클라크, 적과 친구_이진희, 행복한 사랑은 없다_루이 아라공,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_김민정, 당신의 텍스트 6_성기완, 이별의 순간_슈테판 도이나슈, 항구_리처드 브라우티건, 나는 알고 있다_기유빅, 어른스런 입맞춤_정한아, 사막_이문재, 텅 빈 우정_심보선, 그래서_김소연​Ⅱ 나만의 인생 : 질문의 책-44_파블로 네루다, 나만의 인생_하재연, 로션의 테두리_최정진, 서봉氏의 가방_천서봉, 알 수 없어요_황인숙,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_신해욱, 수채_손택수, 마흔한 번의 낮과 밤_권혁웅, 음악 감상_윤병무, 사라진 계단_김행숙, 명왕성 되다(plutoed)_이재훈, 모스크바의 하루_사라 키르쉬, 미망(未忘) 혹은 비망(備忘) 4_최승자, 밤 지하철_캐사 폴릿, 금요일_유희경, 밤의 놀이터_이원, 첫사랑_이영주, 등_김선우, 너무나 많은 것들_앨런 긴즈버그,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_황인찬, 두 개의 4월_다니카와 슌타로, 커다란 플라타너스 앞에서_김기택, 느린 노래가 지나가는 길_이기인Ⅲ 네가 꿈꾸는 것은 : 네가 꿈꾸는 것은_이성미, 이윽고 머릿속에_이성복, 오른손은 모르게_이장욱, 비밀_박상수, 펠리컨_로베르 데스노스, 발생하려는 경향_오은, 납치의 詩_니키 지오바니, 바닷속 sea-depth_김정환, 혼란_니노 니콜로프, 구원(久遠) 7 - 구원(救援)_장이지, 난분분하다_허연, 나의 까마귀_레이먼드 카버, 봄밤_김경주, 스윙_여태천, 마치 뭐나 되는 것처럼_앙드레 프레노, 실수_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작년 이맘때 나는 죽었다_에밀리 디킨슨, 이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_세사르 바예호, 공원_자크 프레베르, 꽃들_문태준, 필요한 것들_심보선, 코_이근화, 카프카_남진우Ⅳ 다행한 일들 : 다행한 일들_김소연, 오랫동안의 바쁜 일이 끝나고_로버트 블라이, 더 멀리_폴 엘뤼아르, 붉은 말_자크 프레베르, 맨드라미_김명인, 지금은_피에르 르베르디, 사랑을 지키다_박시하, 경계선_에이드리언 리치, 언제나 용감한_칼 크롤로브, 아가페_세사르 바예호, 그리운 시냇가_장석남, 거의 모든 아침_김안, 다행이라는 말_천양희, 무반주 계절의 마지막 악장_최하연, 민주적인 판사_브레히트, 마티스_크리스티앙 보뱅, 5분이 지났다_김언희, 예술가_셰이머스 히니, 가능하다_김언, 칠조심_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조그만 수조의 형광물고기_고형렬, 감사_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안녕, 나의 친구,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_세르게이 예세닌
진은영 시인이 고른 92편의 시와 다정한 위로의 에세이
오롯이 나를 위해 쓰다듬고 울어주고 사랑하는 시간
밤바람을 깨워서라도 꼭 읽고 싶은 시가 있다

시시詩時하다 는 2011년에서 2016년에 걸쳐 진은영 시인이 한국일보에 연재한 ‘아침을 여는 시’ 가운데 92편을 골라 엮은 책이다. 저자 진은영은 한국 시에서 외국 시까지, 관록 있는 시인에서 젊은 시인까지 시인이자 철학자의 안목으로 고른 순도 높은 시들과 자신이 특별히 사랑하는 시의 목록을 담았다. 거기에 시를 읽고 풀어낸 에세이는 삶을 깊숙이 관통하는 동시에 편안하고 다정하게 일상을 위로한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시를 어떻게 감상하고 해독하고 체득해 나아가는지를 정직하게 배울 수 있다.

스스로도 이 미칠 것 같은 마음이 없었더라면 시를 쓰지 않았을 것 이라고 고백하듯 시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순간들을 세심하게 살펴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되고, 어느덧 마음이 치유되어 일상을 이어나갈 힘이 차오르는 듯하다. 파블로 네루다의 말을 빌자면 ‘시가 내게로 오는’ 순간이 있다. 어렵게 느껴지던 시가 속사정을 헤아리면서 단번에 이해되기도 하고, 같은 시라도 한 해 한 해 다르게 읽힌다. 그만큼 마음의 절실함과 닿을 때 시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마음이 허기지고 시가 고프고 위로가 필요할 때, 곁에 두고 언제든지 읽을 수 있는 내 손안의 작고 깊은 위로의 책 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에게 시가 필요한 시간, 마음에 꼭 맞는 시를 골라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추천의 글 - 간절하고 간절하여 거짓말을 진실로 뒤바꾸는, 시

Ⅰ 이별의 순간

너는 말했다_뻬이따오
환절기_박준
네 이름은 손 안의 한 마리 새_마리아 츠베타예바
당신 생각_김태형
숲에 관한 기억_나희덕
낯선 여인이 나온 어느 날 오후의 꿈_로버트 블라이
세 개의 벽과 두 개의 문_쥘 쉬페르비엘
某月某日의 별자리_황학주
손가락이 뜨겁다_채호기
그녀_배용제
밤의 파리_자크 프레베르
고슴도치_폴리 클라크
적과 친구_이진희
행복한 사랑은 없다_루이 아라공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_김민정
당신의 텍스트 6_성기완
이별의 순간_슈테판 도이나슈
항구_리처드 브라우티건
나는 알고 있다_기유빅
어른스런 입맞춤_정한아
사막_이문재
텅 빈 우정_심보선
그래서_김소연

Ⅱ 나만의 인생

질문의 책-44_파블로 네루다
나만의 인생_하재연
로션의 테두리_최정진
서봉氏의 가방_천서봉
알 수 없어요_황인숙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_신해욱
수채_손택수
마흔한 번의 낮과 밤_권혁웅
음악 감상_윤병무
사라진 계단_김행숙
명왕성 되다(plutoed)_이재훈
모스크바의 하루_사라 키르쉬
미망(未忘) 혹은 비망(備忘) 4_최승자
밤 지하철_캐사 폴릿
금요일_유희경
밤의 놀이터_이원
첫사랑_이영주
등_김선우
너무나 많은 것들_앨런 긴즈버그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_황인찬
두 개의 4월_다니카와 슌타로
커다란 플라타너스 앞에서_김기택
느린 노래가 지나가는 길_이기인

Ⅲ 네가 꿈꾸는 것은

네가 꿈꾸는 것은_이성미
이윽고 머릿속에_이성복
오른손은 모르게_이장욱
비밀_박상수
펠리컨_로베르 데스노스
발생하려는 경향_오은
납치의 詩_니키 지오바니
바닷속 sea-depth_김정환
혼란_니노 니콜로프
구원(久遠) 7 - 구원(救援)_장이지
난분분하다_허연
나의 까마귀_레이먼드 카버
봄밤_김경주
스윙_여태천
마치 뭐나 되는 것처럼_앙드레 프레노
실수_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작년 이맘때 나는 죽었다_에밀리 디킨슨
이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_세사르 바예호
공원_자크 프레베르
꽃들_문태준
필요한 것들_심보선
코_이근화
카프카_남진우

Ⅳ 다행한 일들

다행한 일들_김소연
오랫동안의 바쁜 일이 끝나고_로버트 블라이
더 멀리_폴 엘뤼아르
붉은 말_자크 프레베르
맨드라미_김명인
지금은_피에르 르베르디
사랑을 지키다_박시하
경계선_에이드리언 리치
언제나 용감한_칼 크롤로브
아가페_세사르 바예호
그리운 시냇가_장석남
거의 모든 아침_김안
다행이라는 말_천양희
무반주 계절의 마지막 악장_최하연
민주적인 판사_브레히트
마티스_크리스티앙 보뱅
5분이 지났다_김언희
예술가_셰이머스 히니
가능하다_김언
칠조심_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조그만 수조의 형광물고기_고형렬
감사_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안녕, 나의 친구,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_세르게이 예세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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