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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를 함께 읽다


리영희교수가 서거한지도 어느덧 6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박근혜가 탄핵되어 적폐척결의 상징이 되어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박정희를 우상화하려는 노력은 전방위로 확대되었었다. 그런 가운데 적폐세력의 사익은 더욱 확대되었고, 그것들이 확대되는 만큼 사회는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로 변모되어갔다. 이처럼 아직도 우상들이 사라지기는커녕 사회곳곳에서 더욱 요란스럽게 기승을 부리던 2016년 봄, 창비학당에서는 오늘의 현실을 분석하고 돌파할 길잡이를 리영희와 그의 텍스트에서 찾아보기로 하고 리영희 함께 읽기 강좌를 개설했다고 한다. 이 강좌에서 강연자들이 강연한 내용을 중심으로 책을 펴냈으니 바로 이 책 [리영희를 함께 읽다]이다. 내가 리영희교수를 책으로나마 처음 만난 건 386세대가 다 그러했듯이 대학교 새내기 시절이었다. 남모를 방황에, 학교마저도 심드렁해하며 그저 서성이고 있는 나에게 선배들은 은밀(?)하게 다가왔고,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강요(?)에 의해 처음 읽은 책이 [전환시대의 논리] 그리고 [우상과 이성]이었다. 이들 책을 읽고 난 후, 나도 이 책들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똑 같았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동반한 방황은 더 깊어졌던 것 같다. 리영희교수를 사상의 은사, 생각의 스승으로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그의 책을 읽은 사람들이 의식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리영희교수를 만난 적은 없지만, 그러나 그를 사상의 은사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스스로 그를 스승이라 부르고 있다. 우상의 저편에 이성을 두고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생각하는 것과 대비되는 말을 우상이라고 할 때, 우상은 생각이 없는 것 또는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 이라고 한다. 의식화란 깨어나는 것, 사유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대상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주체에 대한 각성이라고 할 때 그는 의식화의 스승이고 나의 스승이 맞다. 이 책은 그런 리영희교수를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그가 생각했던 사상과 역사 그리고 그가 살아온 삶이 그것이다. 지식이나 정보의 축적과는 다른 차원의 앎,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의 눈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앎을 강조했다는 리영희. 그에게 사유의 존재, 의식의 존재란 잠에서 깨어 자신이 잠들어 있던 곳이 감옥임을 알아차리는 것 이었다고 한다. 강연자들은 그가 이런 사유방식을 통해 분단과 통일, 핵문제를 어떻게 풀어갔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또한 역사문제에 있어서는 당시나 지금이나 충분히 해명되지 않은 과거인 베트남전쟁과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그가 1985년 [베트남전쟁]이란 책을 출간한 이유는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지났지만 아무도 이 전쟁을 정리하지 않고, 전쟁이 끝난 지 10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누구도 이 전쟁을 기억하지 못해서였다고 한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40년이 넘게 흘렀지만 지금의 인식 또한 그때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한국사회의 기억을 바로잡을 때 우리사회가 보다 성숙해 질 수 있음을 리영희교수는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우리가 참전을 하여 많은 군인들이 죽었고, 민간인 학살 등 우리가 저지른 과오 또한 적지 않았음을 반성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우리사회에도 제국주의의 잔재가 어른거림을 느낄 수가 있다.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고 우리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시각으로 본 관점이 우리인식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비단 베트남문제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더불어 그는 한국 내 친일파와 일본 내 친한파를 통해 한일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지점이 어디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일본에서 친한파라 불리는 사람들은 과거 일본 식민지정책의 주역들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이 만주국에서 박정희의 상관으로 있었던 사람들이다. 심심하면 터져 나오는 망언이나 교과서왜곡 등 일본이 저지르고 있는 온갖 것들은 식민지시절 그들을 도운 사람들이 한국권력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리영희교수가 생전에 소망한 것은 자신의 책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시대가 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그의 책을 찾아서 읽고 있다. 그것은 아직도 그가 원했던 방향으로 우리사회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책에서 주장했던 가치들이 현실 속에서는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몇 년 전 [대화]를 읽으면서, 리영희교수의 삶과 철학을 음미하고 우리사회를, 그리고 나를 되돌아볼 기회를 가졌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쁨과 희열보다는 회한과 씁쓸함이 더 많은 삶이었지만, 그나마 젊은 시절 리영희교수를 만나 조금이나마 사유하면서, 각성하면서 살아온 것 같아 한편으론 마음이 놓인다. 리영희교수 생전에 손녀딸 같은 20대 처녀가 인터뷰 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충고 하나만 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리영희교수가 한 충고는 simple life, high thinking 이라 했다고 한다. 사유한다는 것, 나 자신에 대해 각성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상에 맞서는 이성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 우리 곁에 불러낸
리영희의 삶과 사유, 그리고 실천하는 글쓰기

2017년 5월 조기대선을 앞두고 지금 이 땅의 국민들과 널리 함께 읽고 싶은 책 으로 한 후보는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를 꼽았다( 동아일보 2017. 4. 24). 이 후보의 말처럼 촛불정국 이후 새 시대의 정의와 가치를 상상할 용기 를 이 책에서 구할 수 있다면 그건 어떤 까닭일까?

이 책 리영희를 함께 읽다 는 2016년 2월부터 5월까지 리영희재단과 창비학당이 공동으로 기획한 ‘리영희 함께 읽기’ 강좌의 내용을 엮은 책이다. 고병권, 김동춘, 구갑우, 홍윤기, 박태균, 백승욱, 서중석, 김정남, 최영묵, 김효순(이상 게재순) 등 동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저마다의 관심과 관점으로 리영희 텍스트를 독해하고, 그 현재적 의미를 여러 시민들과 함께 나눈 결과다.

기자·비평가·학자로서 리영희(李泳禧, 1929~2010)에게 글쓰기란 곧 실천이었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군사독재체제를 뚫고 나온 그의 글은 아홉번의 연행, 다섯번의 수감, 세번의 재판과 더불어 ‘해직언론인’ ‘해직교수’라는 타이틀을 안겨줬다. 오늘의 시민-지식인들이 리영희를 함께, 다시 읽는 까닭은 그를 현대사의 주요 인물로 기리거나 과거의 한 페이지로 간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자기 삶을 걸고 싸워온 우상들 ― 식민잔재, 반공이데올로기, 핵과 전쟁 ― 이 여전히, 그리고 또다시 위력을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리영희의 대표작이자 첫 저서인 전환시대의 논리 (1974)부터 그가 투병 중에 완성한 구술회고록 대화 (2005)에 이르기까지 리영희의 사유를 다시 사유함으로써 자유인, 해방된 시민으로 사는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책머리에 리영희를 함께 읽는다는 것 | 권태선
일러두기

1부 사상을 읽다
사유란 감옥에서 상고이유서를 쓰는 것: 리영희의 루쉰 읽기 | 고병권
분단·통일문제에 대한 리영희의 생각 | 김동춘
리영희의 국제정치비평 읽기: 핵의 국제정치를 중심으로 | 구갑우
민주시민의 철학으로서 ‘리영희 철학’ | 홍윤기

2부 역사를 읽다
베트남전쟁 이후 30년,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 박태균
리영희 사유의 돌파구로서 중국 문화대혁명 | 백승욱
친일파·‘친한파’, 일본의 과거사 반성 | 서중석

3부 삶을 읽다
리영희 선생과의 50년 | 김정남
전환시대의 논리 부터 대화 까지 | 최영묵
리영희와 저널리즘 | 김효순

지은이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