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감옥에 갇힌 사내의 ‘창백한 안간힘’ - 이병률, 『찬란』 세 번째 시집인 『찬란』에서 이병률은 “기억의 매혹들”(「기억의 우주」)을 이야기한다. “보면 안 되는 거울”을 보자 “고통스런 관계를 맺은 기억들”이 “이제 쓰거운 것이 돼버린 파문들을/ 단숨에 먹어치우”며 “마지막인 것처럼 몰려”온다. ‘기억의 우주’라는 제목에 나타나는바, 기억은 드넓은 우주를 적막하게 떠돌다간 어느 순간 “소멸하지 않는 기억의 우주를/ 쌓이고 쌓이는 외부의 내부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매혹적인 것에 대한 향유는 고통을 수반한다. 세이렌의 소리에 들뜬 어부들의 죽음-쾌락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매혹적인 것의 이면에는 항상 죽음의 심연이 도사리고 있다. 매혹과 죽음 사이에 걸쳐 있는 기억의 시적 맥락은 「기억의 집」에서 ‘감옥’이라는 내면공간으로 표현된다. 주목할 점은, 시인 스스로 자기가 만든 기억의 감옥에 갇히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기억들이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산이 있고, 그 산에는 철새들이 입구를 지키는 동굴이 있다. 동굴 속으로 자꾸자꾸 기억이 밀려 들어와 기억의 흔적들로 가득 찬 기억의 집이 만들어진다. 바로 시인의 감옥이다. 하지만 “그 집은 오래된 약속 같아/ 들여다보고 살고도 싶은 여전히 저 건너”에 있다. 마음속에 있지만, 그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이 기억의 “감옥에 갇혀 사전을 끌어안고 살거나/ 감옥에 갇혀 쓸데없는 이야기나 줄줄이 적었으면 좋겠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사내라는 말’에 매혹된 시인의 감옥을 지배하는 것이 ‘사전’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말과 이야기로 펼쳐진 기억의 동굴 속으로 한없이 파고들어 갈수록 시인은 풀 길 없는 “거대한 슬픔”(「거대한 슬픔」)만 느낄 뿐이다. 돌려 말하면 그는 기표의 놀이로는 아예 접근조차 불가능한 “이 심해를 버릴 수가 없다”(같은 시). 그 심해는 “녹은 쇠가 한번 붙으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불로 지져 붙어 떨어지지 않는 이 슬픔”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안」이란 시에서 시인은 “한시도 바깥인 적 없는 나”를 시의 전면에 내세운다. “나는 여기 있으며 안에 있다/ 안쪽이며 여기인 세계에 붙들려 있다”. 바깥이 없는 ‘이 안’에서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기억의 동굴을 계속해서 파헤치면 정말 바깥이 없는 ‘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아니, 바깥이 없는 ‘안’이라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이 말이 그 말로 들릴 때 있지요 그 말도 이 말로 들리지요 그게 마음이지요 왜 아니겠어요 몸피는 하나인데 결이 여럿인 것처럼 이 사람을 귀신이라 믿어 세월을 이겨야 할 때도 있는 거지요 사람 참 마음대로지요 사람 맘 참 쉽지요 궤짝 속 없어지지 않는 비린내여서 가늠이 불가하지요 두 개의 달걀을 섞어놓고 섞어놓고 이게 내 맘이요 저것이 내 맘이요 두 세계가 구르며 다투는 형국이지요 길이가 맞지 않는 두 개의 자(杍)이기도, 새벽 두 시와 네 시 사이이기도 하지요 써먹을 데 없어 심연에도 못 데리고 가지요 가두고 단속해봤자 팽팽히 와글대는 흉부의 소란들이어서 마음은 그 무엇하고도 무촌(無寸)이지요- 「마음의 내과」 전문 마음은 몸피가 하나인데 결은 여러 개이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이 말이 그 말로 들리고, 그 말이 이 말로 들리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외려 마음만 소란스러워진다. “궤짝 속 없어지지 않는 비린내” 같은 이 마음으로 하여 제 삶을 가늠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내용물은 사라졌어도 없어지지 않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찌할 것인가? “가두고 단속해봤자 팽팽히 와글대는 흉부의 소란들이” 마음이란 걸 시인은 알고 있다. 상황이 되면 저절로 흘러나오는 마음의 비린내는 「밑줄」에서 “불안을 비비는 소리”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사람들로 붐비는 역전 식당에 들어간 이 시의 화자는 우연히 한 여자와 합석을 하게 된다. 처음 보는 이성과 한 벌의 반찬을 놓고 식사를 하는 이 상황에 화자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그는 “벌 한 마리 안으로 들어오려는 건지/ 도리가 없는 건지 창문 망에 자꾸 부딪쳤습니다”라는 우의적인 정황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화자도, 여자도 반찬 그릇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이 불안한 마음의 소란을 앞에 두고 시인은 사람살이에서 수없이 목격하는 “뜻밖의 밑줄들”을 발견한다. 갑작스레 출현한 타자(이방인)는 시인을 불안감에 빠뜨린다.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타자의 벽은 그러나 시인 스스로 빠져든 마음의 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시인이 쌓은 벽이 곧바로 타자의 벽을 만든다. 원치 않는 타자와 맞닥뜨릴 때마다 마음은 제멋대로 기억 속의 ‘나’를 불러낸다. “이 생은 도처에 나를 너무 낳았습니다”(「팔월」)라는 시적 전언은 정확히 마음에 드리워진 이러한 정황을 가리킨다. 「팔월」에서 시인은 “차도 위 사람이 쓰러져 누운 형태로/ 그어진 흰 선 모양”을 “칠월을 지나는 길에 누워 있는 나”와 동일시하고 있다. 도처에 ‘나’를 낳았으니 도처에서 당연히 ‘나’가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항시도 바깥인 적이 없는 사내는 이렇게 도처에 깔린 수많은 ‘나’로 인해 끊임없이 죽어간다. 칠월의 ‘나’가 사라지면 이어서 팔월의 ‘나’가 사라질 것이다. 타자의 자리로도 갈 수 없고, 그렇다고 안(감옥)에서도 안주할 수 없는 이 사내의 비극적 심연은 「울기 좋은 방」에서 ‘의자에 묶인 너(나)’의 이미지로 변용되어 드러난다. 네가 묶여 있다의자에 있다 눈 내리는 천장 없는 밤에별이 가득 차고 있다 화살나무가 방 안으로 자라기 시작한다 너도 나도 며칠째 먹지 않았으니이 모든 환영은 늘어만 간다 이리도 무언가에 스며드는 건이마에 이야기가 부딪히는 것과 같다 묶어둔너를 들여다보는 동안나는 엎드려 있다 나는 너에게 속해 있었다- 「울기 좋은 방」 전문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이병률은 “옷 하나 걸 곳 없고, 못 하나 박지 않은 방. 그 빈방을 서성이다 마음에 드는 의자 하나를 골라 앉는 일이 하고 싶다. 사치하고 싶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의자에는 아무도 앉으면 안 된다. “의자가 가진 형태 혹은 형식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풍모를 가졌다는 편협한 기준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의자에 직접 앉지 않고 언어로 그
영혼의 극지에서 돌아보는 아스라한 생의 통증
정체되어 있지 않은 감각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병률이 세번째 시집. 전작 바람의 사생활 이후 3년 3개월 만에 발간된 찬란 의 시들은 처연하고 오롯하다. 여전히 불분명하며 그윽하고, 일촉즉발의 순간들을 여미고 여며 아주 오랫동안 달인 듯한 이병률의 시에는 설명할 수 없는 생의 절박함, 그 피치 못할 영혼의 일이 새겨져 있다. 오래도록 존재 형성의 근원을 사유하고,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인식하며, 바닥없는 슬픔을 응시하는 시인의 깊고 조용한 시선에 우리 역시 마음의 경계가 흔들리고 이끌릴 수밖에 없는 연유다.
생의 속내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 그것은 이따금 슬프고 이따금 아프다. 이병률은 이를 지나치지도, 무화시키지도 않는다. 쓰린 상처마저 그대로 두고 본다. 그렇게 유심히 들여다보는 통증에는 온전한 치유는 없더라도 진실한 위로는 있을 수 있다. 위로는 이해하는 자의 것이다. 이해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닌 가슴의 것이기에 감정도 온도도 아니다. 내미는 손의 온도가 좋은 것일 리 없다. 그저 내미는 마음. 그 마음의 씀. 처연한 생을 파고드는 영혼의 다 씀이 있는 것이다. 마음의 결을 모두 겪고 나서야 할 수 있는 일을 이병률은 시집 찬란 을 통해 하고 있다.
제1부
기억의 집
햄스터는 달린다
못
자상한 시간
내가 본 것
거대한 슬픔
생활에게
이 안
새날
밑줄
그런 시간
바람의 날개
찬란
제2부
창문의 완성
사랑은 산책자
사과나무
모독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일말의 계절
다리
시인은 국경에 산다
무심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삼월
망가진 생일 케이크
밤의 힘살
얼굴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울기 좋은 방
고양이가 울었다
제3부
마음의 내과
왼쪽으로 가면 화평합니다
팔월
절연
불편
달리기
슬픔의 바퀴
별의 자리
굴레방 다리까지 갑시다
기억의 우주
입김
좋은 풍경
화사한 비늘
유리병 고양이
제4부
있고 없고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겨울의 심장
길을 잃고 있음에도
굵은 서리
열차 시간표
마침내 그곳에서 눈이 멀게 된다면
붉은 뺨
불량한 계절
심해에서 그이를 만나거든
봉지밥
마취의 기술
진행의 세포
해설/ 영혼의 두 극지 사이에 서 있는 사과나무-허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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