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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


소위 ‘딴짓’이라 함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학생에게는 공부 이외 다른 모든 행위가 ‘딴짓’으로 지칭되며, 직장인에게는 업무 이외 다른 모든 행위가 ‘딴짓’에 포함된다. 이는 사회 인식이 학생과 직장인의 의무는 공부와 업무라는 것으로 자리매김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렇듯 방과 후에도, 퇴근시간이 지났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에 집중하고 열중하는 행위가 미덕이라 여길 때가 있었다.현대에 와서는 학생과 직장인에게 씌운 굴레가 많이 느슨해지고 자유로워졌다. 여전히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지 못해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주위에 있고 정시 퇴근은 꿈도 못 꾸며 자신을 하숙생이라 지칭하는 직장인들이 곁에 있지만, 그럼에도 과거에 비해 자유로워졌다고 말하고 싶다. 사회에서 주어진 직무를 제대로 이행한 후에는 정신적‧육체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허용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딴짓의 고수’로 등장하는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2014.07.25. 웅진서가)』의 저자 이기진은 ‘딴짓’을 즐기는 자신의 행태를 두고 ‘소속된 곳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 주류에서 비켜 서 있는 듯한 느낌, 소외(p.52)’와 같은 말로 설명한다. 이 표현은 물리학자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았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흰 가운을 입은 체 실험실 혹은 연구실에서 두문불출하는 딱딱한 이미지로만 물리학자를 떠올리는 고정관념을 지녔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점은 밤새서 연구해야 할 때가 많았을 물리학자에게 ‘딴짓’을 허용할 여유 시간이 주어졌을지 그리고 그에게 ‘딴짓’이란 무엇인지였다.물리학자 이기진에게 ‘딴짓’이란 골동품 수집을 가리킨다. 무작정 오래된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영감을 주는 물건(p.174)’들만 구입한다는 게 그의 철칙이다. 그의 골동품 수집 취미 덕분에 아르메니아공화국 시장에서 구입한 ‘녹색의 에마야주(p.146)’가 압록강 상표를 달고 있는 우연을 발견하기도 했으며, 동료 교수에게 ‘아니, 이 교수? 이제는 개집까지 모으냐?(p.211)’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가 소개한 보물 중 도자기 새에 꽂혀있는 오렌지 껍질 벗기는 칼과 오렌지나 레몬즙을 짜는 물건이 탐났고,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소설 「어린왕자」에 ‘생텍쥐페리와 그의 부인인 콘수엘로의 역사적이고 기적적인 사랑 이야기(p.191)’가 숨겨진 사실에 놀랐다.‘취미 생활은 연애와 같다(p.87)’고 말한 이 책의 저자에겐 물리학자라는 본업을 제외하고도 동화책을 출간한 동화작가, 깡통로봇을 아트페어에 출품한 작가, 신문에 만화 연재를 했던 만화가 등 다양한 직함을 가졌다. 짐작하건데 그는 남다른 체력의 소유자이거나 남들보다 강한 열정의 소유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독특한 이력에 대해 ‘뭔가 논리 정연하고 앞뒤가 딱딱 맞는 상황이 되도록 미리 준비했던 것은 아니라(p.236)’고 고백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발언 앞에서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현재의 상태에서 좀 더 재미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즐겁게 사는 것(p.68)’이야말로 개인이 단조로운 일상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 ‘혁신의 시작(p.68)’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가 타인보다 특별하고 출중해서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다. 다만 하고 싶은 일을 실천에 옮겼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의 리뷰 제목을 ‘딴짓의 고수에게 삶의 방식을 배우다’로 정했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을 시작해 볼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나의 이 결심이 내게는 혁신의 시작이다.
오래된 친구, 오래된 단골, 오래된 그릇,
오래된 집에만 탐닉하는 정말 특이한 남자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며 거기서 승부를 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면서 재미나게 살아볼 수도 있다. 서강대학교 이기진 교수는 물리학자로서 매일 연구에 빠져 고리타분하고 단조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실험실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부터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펴면서 뭔가에 미친 사람처럼 딴짓에 빠져든다. 대다수 사람들이 가장 화려하게 신경 쓰고 남의 눈치를 보며 성취하고자 하는 현실을 오히려 절제하고 단조롭게 유지하면서 살기에, 그 나머지 삶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깊이 몰입하면서 ‘딴짓’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글을 못 읽어 학교를 그만두었던 소심한 소년이 물리학에 심취하면서 공부에 빠져들고, 아르메니아공화국, 파리, 일본의 다양한 문화를 섭렵하면서 딴짓의 고수가 되어버린 사연. 한 남자의 진지하고도 웃기며 고집스럽게 단조롭고도 비교할 수 없게 독특한 ‘딴짓’의 파노라마. 그런 물리학자가 키운 딸이 투애니원의 ‘씨엘’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들어가는 말
1장 물리학자의 연구실
세계양궁연맹에다 되돌려 주고 싶은 기념품 16
굳이 옷 입는 스타일에 대해 변명을 하자면 22
25년 전, 아르메니아에서 가져온 설탕 펜치 27
병따개로 배우는 물리학 상식 34
‘에릭’이라는 이름의 핑크빛 로봇 39
몽골에서 풍기는 버터 향기 44
손잡이가 깨진 도자기의 가격? 51
영혼을 갉아먹는 연필깎이 소리 56
목각 인형 아가씨, 왜 내 눈길을 피하시나요? 62
데뷔도 하기 전에 이미 만화가가 되었다 69
물리학자가 동화를 쓰게 된 사연 74

2장 만화가의 단골 카페
취미 생활은 연애와 똑같다 86
민트 티와 튀니지에서 데리고 온 사자 한 쌍 90
범상치 않은 ‘포르투갈 사나이’ 설탕그릇 99
남지도 않고, 남아도 좋은 브라우니 104
보드카를 마시려면 트레이닝을 해야 한다 111
와인병에 똥구멍이 달린 이유 117
막대 사탕의 창시자, 피에로 구르망 123
빵은 사연과 함께 먹어야 맛있다 128
티를 마시는 것은 마술을 부리는 것 133

3장 알리바바의 보물 창고
세상을 여행하는 녹색 에마야주 144
내 인생은 프라리옹에 오르기 전과 후로 나뉜다 152
막포도주를 담기엔 너무 예쁜 코발트 병 160
수건에 둘둘 말아 가지고 다니는 전용 술잔 164
채린이의 오래된 밥그릇 169
서촌 길을 누비는 롤리 자전거 178
장난감인가요, 라디오인가요? 183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에 대한 뒷이야기 188
마이 소울 시티, 포르투갈의 발르드바르구 193
자나 깨나 야구만 생각나던 시절이 있었다 201
아니, 이제는 개집까지 모으냐? 208
내 최고의 컬렉션은 한옥 갤러리 217

4장 할머니의 골동 부엌
날렵한 야채수프용 국자 230
외롭거나 추울 땐 레몬&오렌지즙이 좋다 235
손잡이가 달린 제빵 방망이 242
왠지 도시락을 싸고 싶은 날 247
시장에서 산 토끼 고기로 뭘 만들까 252
이보다 더 달걀을 잘 자를 수는 없다 258
물리넥스 씨, 멋있게 갈아 주는 기구가 필요해요 264
나는 왜 행주에 집착하는가 270
가난한 지혜가 만든 철사 바구니 277
얼음 통과 각설탕 통 사이 281
이바라키 현의 바닷가를 생각하며 286
세상에서 제일 싼 정어리 깡통 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