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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


오에 겐자부로가 기형아를 출산하고 난 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장애아를 낳았다는 사실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럽고 죄스러운 불행으로 가정한다면, 실은 이 소설은 기형아의 아버지로서 쓴 자전적 의미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아가 극단의 불행을 겪는 이들의 <보편적인 체험>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이 내가 버드의 처절함에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라고 사족을 붙인 것은 아직 출산의 기적을 경험해보지 않은 내가 희귀병을 앓는 아이를 낳았을 때 그 부모가 느낄 아득할 만큼의 절망감과 죄책감을 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인용하자면당사자에게 이러한 비극은 <다른 어떤 인간 세계로부터도 고립되어 있는 자기 혼자만의 수혈(竪穴)을 절망적으로 깊숙히 파들어가는> 체험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토록 고립된 이 개인적인 체험을 읽는 까닭은 히미코가 이야기했듯이 <인간에 관한 한 완전히 불모인 고통이라는 것>은 없다는 희망 덕분이다.개인적으로는 146페이지의 버드와 히미코의 섹스 장면이 매우 인상 깊었는데, 그는 히미코와의 섹스를 통해 아비로서 또는 인간으로서 경험한 최악의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애정이나 양심의 회복이라기보다는 오욕의 성교를 통해 더 큰 모멸과 기만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일종의 자기파괴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그가 아기의 쇠약사를 바라며 느낀 죄책감은 차라리 차악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버드는 <터프한 선인>도 <터프한 악인>도 아닌 아프리카 여행을 꿈꾸는 보통의 인간이었기에 절망의 순간에 직면하여 파괴에의 욕구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기꺼이 합리화하고 싶다. 히미코 역시 자살한 남편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인지 마땅히 받아야 하는 징벌 혹은 신성한 의무인 것처럼 다른 사내들을 때로는 여인들을 구원하고 있었을 것이다.요람 속 쌍두의 아기를 바라보며 고통스러운 버드는 핵실험에 관한 뉴스에는 무감할 뿐이다.세계가 인류 일반에 어떤 중대한 사건을 불러일으키든 간에 개인에 닥치는 소용돌이를 압도할 수는 없는 법이다.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도 여전히 기만에서 기만으로 도피하는 버드였으나 마침내 이 도망이 무엇을 지키기 위함이었는지를 떠올리는 장면에서비로소 강한 안도감을 느꼈다.현실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그가 말한대로 <정통적으로 살도록 강요당하는 것>인 모양이다. 소설 초입에서 불량배와 싸우던 버드는 이제 버드라는 어린애스러운 별명이 어울리지 않는 어른이 되었고 기어코 삶과 운명을 마주할 것이라는 인간성과 인내의 미덕을 실천할 참이다.아무튼 오에의 뇌성마비 아들은 당연하게도 그의 분신이 되었다. 오에는 어느 시점 이후 더 이상 아들을 소재로 한 글을 쓰지 않기로 하였는데 이미 아들은 실험이 아니라 그의 삶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들의 이름은 <히카리>라고 들었다. 히카리는 일본어로 빛이라는 뜻이다.2019년 8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대표작
개인적인 체험 은 우리 시대의 거의 완벽한 소설이다. -「뉴욕 타임스」

중중 장애아를 둔 아버지가 내적 변화, 성장을 통해서 비극을 극복하고 공생과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장편소설. 27세의 학원 강사 버드는 결혼한 후 아기가 생기지만 아프리카로의 모험 여행을 꿈꾸는 부동(浮動)하는 젊음이다. 태어난 아기가 뇌 손상을 가진 장애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일체의 행동의 자유를 빼앗긴 현실에 절망하고, 아기에 대한 책임감에서 벗어나려 술과 옛 여자친구 히미코에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개인적인 체험 은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의 죽음을 원하는 청년의 영혼 편력, 절망과 일탈의 나날을 그리고 있다. 출구 없는 현실에 놓인 현대인에게 재생의 희망은 있는지 물음을 던지는 오에 겐자부로의 수작(秀作)이다. 이 작품은 오에의 인생과 작품 세계에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개인적인 체험

‘일찍이 맛본 적이 없는 끔찍한 공포감이 버드를 사로잡았다.’

해설: 오에 겐자부로, 세상의 모든 폭력에 맞서다
판본 소개
오에 겐자부로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