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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설계


한때 우연이란 것을 갈망한 적이 있었다. 우연은 필연이 된다고 믿었고 필연은 숙명처럼 다가오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우연을 찾아 헤매기도 했고, 우연을 가장하기도 했다.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스무살 전후에 나는 필연이 될 우연을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그런 우연은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마음만 조급했지 내가 바라는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은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이다. 첫사랑과 의도하지 않게 헤어지고 나서 그녀와의 재회를 꿈꾸면서 했던 일이다. 그런데 지금도 가끔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그런 우연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나와 그녀의 운명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년여를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음에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더 이상했으니까 말이다. 우연이란 일정한 법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 혹은 불규칙하고 무작위적인, 의도하지 않은 일들을 뜻한다. 사전적 의미는 더 포괄적이다. 그저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이 우연이라고 되어있다. 그런 우연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만든 힘이라면 이해가 될까? 영국에서 발행되는 과학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가 기획하고 펴낸 이 책 [우연의 설계]는 우주가 탄생하고 지금까지 지속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우연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또한 마크 뷰캐넌과 같은 저명한 과학 저술가들이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우리가 우연이라고 믿는 것에는 어떠한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런 우연과 행운이 비과학적인 것인지, 우리가 그런 우연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등을 알아보고 있다. 138억년 전 빅뱅에 의해 우주가 탄생할 때부터 시작하여 은하계, 태양계, 그리고 지구와 달이 형성된 것과 같은 천문학적 사건은 온통 무작위적인 사건으로부터 일어났다. 지구라는 행성에 생명체가 등장한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무작위의 화학적 혼합물 속에서 분자들이 우연히도 적절하게 뒤섞여 생명 탄생에 필요한배열을 만들어 낼 확률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낮은 확률이라고 한다. 사실 단순세포인 세균이 지구에 등장한 것은 통계적인 우연이 아니라 당연히 기대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유기분자들은 가장 흔한 물질이 반응할 때 형성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잡한 생명체의 등장은 극히 드문 우연한 사건 덕분에 40억년동안 지구상에서 딱 한번 일어났다. 그것은 어쩌면 관측 가능한 우주에서도 단 한번밖에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로또에 당첨된 확률은 어마어마하게 큰 셈이다. 종의 탄생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화계통수에서 각각의 종분화 사이의 길이를 측정하여 패턴을 연구하면 약 78퍼센트가 지수분포곡선을 따른다고 한다. 이것이 나타내는 의미는 사건들이 축적되어 종분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단일사건이 종분화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화 또한 돌연변이 형태로 우연한 사건에서 시작된다. 그 돌연변이가 살아남을지는 자연선택에 달려있지만 말이다. 자연선택은 종분화의 결과를 뒤 따르는 것이지 종분화의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종분화 역시 임의적인 행운의 사건이다. 우리가 지금 지구라는 행성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무작위적인 천문학적 사건, 즉 우연인 셈이다. 과학의 진보과정에서도 우연의 역할은 적지 않다. 수많은 발견과 발명이 우연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과학자들을 행운아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을 우연 또는 행운으로 볼 것인지를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 답을 발견할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에게 찾아온 우연한 기회를 오류라고 무시하지 않고 그 중요성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발견과 발명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행운이란 배우고 익히는 것이 가능한 기술이 되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지혜로운 사람에게만 행운이 찾아온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흔히 우연의 일치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우리들의 뇌가 서로 뒤엉켜 일어나는 온갖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간은 어떤 일을 대하게 되면 그 일에서 패턴을 찾아내려 노력하게 되고, 인간의 뇌는 패턴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낸다. 그러나 만약 패턴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인간은 자신의 무지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무작위성 혹은 우연이라 부르는 대안에 기댄다. 그러나 양자적 존재들을 제외하면 실제에 무작위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겉으로 무작위적으로 보이는 모든 효과는 자연이 예측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무지 혹은 세상에 대해 파악할 수 없는 지식의 한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주에서 딱 한번 일어난 사건이 우주를 탄생시켰고, 지구에서 한번 일어난 사건이 생명체를 탄생시켰다. 그렇게 보면 이런 우연 또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식의 한계 때문에 우연이라는 대안에 기대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들은 우연의 일치 속에는 아무런 의미도 들어있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의 뇌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그냥 걸러내고 그 중 특이해 보이는 것만 골라서 의식적 신호로 올려 보내기 때문에 착각을 일으키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연이 일어나길 기대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우연을 좋아하는 것 일 게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의 생활은 점점 예측가능한 생활을 선호하게 된다. 그만큼 우연이 끼어들 여지를 없게 만드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정확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처음 우주가 생겨나고, 우리들이 이 행성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어찌되었든 우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세상에 무작위성이란 없다 해도 한번쯤 우연을 기대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기에 저자들은 때로는 결과를 운에 맡기고 무언가 도전해보는 데서 찾아오는 것이 행복이라 말하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우연은 어떻게 우주를 작동시키는가! 이언 스튜어트, 마크 뷰캐넌을 비롯한 23인의 학자가 밝히는 우주 안에서 벌어지는 행운, 무작위성, 확률에 대한 매력적인 통찰! 어떤 기막힌 우연으로 삶이 바뀌는 경험을 한 적이 있거나, 적어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친구 대신 나간 소개팅에서 예전에 짝사랑하던 사람을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든가, 생전 처음 간 여행지에서 하룻밤 묵은 숙소가 알고 보니 어릴 적 헤어진 아버지의 집이었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신기해하며 거기에 어떤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 예를 들어 옆집에 딸과 동갑인 아이가 이사 왔는데, 둘의 생일이 똑같은 걸 알고 나서 두 아이가 틀림없이 절친이 될 거라고 여기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것일까? 이런 설명되지 않는 일들에는 대체 어떤 힘이 숨어 있는 것일까? ‘우연(chance)’이란 일정한 법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 불규칙하고 무작위적인, 의도하지 않은 일들을 뜻한다. 이 책 우연의 설계 에서는 우연이란 실제로 무엇이며, 우주가 탄생하고 지금껏 지속되는 과정에서 우연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우리가 ‘기적 같은 우연’이라고 믿는 일에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지, 흔히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운을 손에 넣었는지 등 우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간다. 더불어 우연 혹은 행운이 정말 비과학적인 것인지, 우리의 인생에 도움이 되도록 우연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이언 스튜어트, 마크 뷰캐넌, 폴 데이비스 등 저명한 과학 저술가들이 이 탐험의 안내자가 되어 독자들을 흥미로운 우연의 세계로 인도한다.

서문

1장 - 존재 자체가 크나큰 행운: 빅뱅에서 인류의 탄생으로 이어진 우연한 사건들
로또 맞은 우주 - 스티븐 배터스비, 데이비드 시가
생명의 알고리즘 -폴 데이비스
기적적인 합병 -닉 레인
종의 우연한 탄생 -밥 홈즈
당신은 행운아! -클레어 윌슨

2장 - 우연이 뇌에 미치는 영향: 당신이 진실을 다루지 못하는 이유
세상에 이런 기막힌 우연이! - 이언 스튜어트, 잭 코언
행운의 조건 - 리처드 와이즈먼
가위바위보! - 마이클 브룩스
딜러를 이겨라 - 헬렌 톰슨
행운의 여신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 - 밥 홈즈

3장 - 우연과 수학: 기이하기 짝이 없는 우연의 수학
내가 아는 우연, 내가 모르는 우연 - 이언 스튜어트
우연인 듯 우연 아닌 일 - 로버트 매슈스
셜록도 때로는 함정에 빠진다 - 앤절라 사이니
불확실성에 접근하는 2가지 방식 - 레지나 누조
알면서 모르는 것 - 그레고리 카이틴

4장 - 나의 우주, 나의 법칙: 철학적 막간
내 결정의 책임자는 누구? - 블라트코 베드럴
정해지지 않은 미래 - 폴 데이비스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 마크 뷰캐넌

5장 - 생물학의 카지노: 자연계에서의 우연
생명이 통과하는 우연의 문 - 밥 홈즈
무작위성이라는 방탄복 - 헨리 니콜스
의도된 잡음 - 로라 스피니
변덕쟁이 유인원 - 딜런 에번스

6장 - 우연을 활용하기
진정한 무작위성 발생기를 찾아서 - 마이클 브룩스
행운의 뜀뛰기, 레비 플라이트 - 케이트 레빌리어스
우연과 인공지능 - 아닐 아난타스와미
파워 오브 원 - 로버트 매슈스
길을 잃어보는 것도 좋아 - 카트린 드 랑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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